두 번째 챕터를 읽고

사회가 내 편이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때

“노키즈존은 없다”를 읽고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에 접어들고, 아이의 돌봄이 다시 문제가 생겼다.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는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6주 정도 방학기간을 맞았다. 설상가상, 나는 7월 한 달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동안 영어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이를 어디에도 보낼 수 없는 나는, TV 앞에 아이를 앉혀두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나마 온라인 수업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수업을 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고 난 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회의를 참석해야하거나 수업을 참여해야할 때 굉장히 난감해 진다. 노키즈존은 없다, 라는 글에서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보고 철렁했다." 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꼭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아이는 나를 떠난다. 내가 어디에 함께 가자고 해도, '싫어 엄마 혼자 가.' 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런데, 지금 나는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특정 공간의 출입을 거부당한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를 자꾸 작아지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요즘이다. (명소희)

슬픔을 마주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읽고

비대학 청년을 지원하는 대안학교에서 1년 넘도록 영화 리터러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마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을 미디어교육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토록 긴 시간 치열하게 텍스트를 고민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또다른 시청각적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지, 영화가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을 재활성화하지는 않을지, 학교 선생님들과 나는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사실 내 입장은 일관적이었다. 슬픔을 말하는 영화도 봐야한다는 기나긴 설득의 여정을 걷고 있다. 슬픔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슬픔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고, 영화라는 배 위에 우리의 슬픔을 실어 보내면 된다고 종종 말해드린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슬픈 비평과 기획을 하고 싶다. (임종우)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작가를 원하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읽고

진로와 직업 사이에서의 혼돈은 여전히 존재하는듯하다. 10여년전이나 요즘이나 상황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특히 하고싶은 것을 떠올릴때면 직업과 연계선상으로 생각을 하는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와도 결부시킨다. 내가 원하지 않는 삶, 원하지않는 공부, 원하지 않는 취업 이러다보니 내일의 시간을 잃고 오늘만 살아간다. 나의 꼬맹이때 원하는 직업, 진로는 탐험가였다. 중학교때는 팝 칼럼리스트였고 고등학교 무렵에는 방송국 PD가 꿈이었다. 어찌되었건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하다. 극영화,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다가 몇 편 비평 글쓰기를 초보 수준으로 해보았고 최근 100일 글쓰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냥 일상에서 관찰하고 발견하고 그 느낌을 써보는 과정이었다. 작가가 되든 원하는것은 그냥 하면 되는것 같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절대자에게 기도를 하는게 아니라 ‘로또를 먼저 사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하나씩 지워보자 그리고 하나씩 내가 원하는것을 시도해 보자, 작가가 꿈인 사람이여, 지금 다시 내 계획을 생각들을 글 부터 써보자. (김기봉)

주부 9단과 셰프

"엄마의 노동은 일흔 넘어도 계속된다”를 읽고

어릴적 맛있는 밥을 해준 사람은 할머니와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직장을 그만 둔 엄마였다. 나에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엄마와 할머니였다. 하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셰프들은 모두 남자였다. 왜 솜씨 좋은 엄마들은 셰프가 되지 못하고 주부 9단으로 머물러야 했던 것일까. 그들의 요리는 예술이 되지 못하고 그저 한 가정 아래에 맛있는 밥을 만드는 노동으로 머물러야 했다. “요섹남”, 요리를 잘하는 매력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요리를 잘하면 매력적이기는 하나 왜 요섹녀는 들어본적이 드문 걸까? 요리를 하는 주체에 따라 그 노동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들의 노동을 주부 9단이라는 가정 안에 귀속된 "주변"의 노동이 아닌 사회의 원동력이 되는 "중심"의 노동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건욱)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다정한 얼굴을 완성하는 법”을 읽고

영화 프로덕션 기간동안 나는 상대의 말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여러 가지의 문제로 지연이 되는 상황,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가 예민해지는 순간, 실수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툭 내뱉어버리는 말들… 상대방의 날이 선 말투에 나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한다 싶다가도 마음과는 다르게 나또한 날서있는 말들이 튀어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준 채 각자의 마음에 깊숙이 새겨두고 다시 촬영을 이어나간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 당시의 서로의 상황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뾰족한 말로 먼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지 내가 경험해보고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것은 쉽게 느껴지는 것 같으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하나씩 경험해보고 이해하면서 사는 방법을 배워 나가야겠다. (홍지희)

좋은 의도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보다 무서운 것”을 읽고

최근에 본가에 내려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겨 수목금 약 3일정도 내려가 있었다.  현재 고향에는 주로 여자애들보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기다리는 남자 애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목요일 저녁 쯤엔 어릴 때 같이 놀던 15년 넘게 텀을 두고 이제서야 만나는 친한 남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약속시간이 애매하게 떠 남은 시간을 약속장소 근처에 살고 있는 사촌오빠를 보기 위해 오빠 집으로 커피를 사들고 갔다. 오빠는 친구와 3달동안 함께 살면서 자격증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많은 사촌오빠들이 있다. 그중에서 제일 나와 성격이 안맞지만 가장 많이 만난 오빠라서, 대화가 안 통해도 또 만나게 된다. 전에도 많이 싸웠다. 이 오빠는 대화라는 포장지 속에 항상 논쟁거리를 숨겨온다. 하지만 나와 사상도 많이 다르고, 대화방식도 너무 거칠어서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은 오빠다. 이번에도 오빠는 친구와 내가 모였으니 재밌는 얘기를 해보자고 하며, 페미니스트, 캣맘, 정치 등 주제를 막 쏟아냈다. 그 순간 매우 피곤했다. 이런 얘기를 하려 온것도 아닌데, 특히 오빠는 페미니스트에 아주 민감하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아니 묻지 않고 따진다.”넌 “페미” 아니지? 넌 오빠가 몇인데 그러면 진짜 안된다.” 오빠가 몇명이 있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저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일선상에 보고 있고, 현대사회에서 큰 죄악이라고 말하는 오빠한테 무슨 말이 통하겠나 싶다. 

그래서 방어적으로 대했던 것 같다. 난 페미니스트라고 하기 뭐하고, 아니라고 말하기 뭐하다. 난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다. 대충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실제로 여성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지레짐작 몇몇 사건들만 알고 있는 그 수준인데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오빠는 크게 흥분하면서 “그런 쪽 성향을 조금이라고 띄는 것도 안된다.넌 학교폭력 방관자나 다름없다. 그런 개,돼지 사상을 가지고 있는 건 무식한 거다. 내 동생 만큼은 그렇게 둘 수 없다.” 동생을 지킨다는 목적의 좋은 의도는 나에게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이건 더이상 대화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대화를 끝맺지 않고 그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박차고 나온 이유는, 정확히 반박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말하는 나에게 실망해서, 하나는 이러다가 사촌오빠와 절연을 할 것 같아서다. 물론 당분간은 만나지 않을 것 같다.


본가에 내려간 3일동안 어릴 때 남동생을 포함해서 본가에 내려가 총 5명의 남자를 만났다. 두 명의 남자(사촌오빠와 그 친구)와 그 외의 남자와의 대화는 결이 매우 달랐고, 나의 태도도 달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말 기빨리는 3일이었고, 나의 무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했고, 좋은 의도가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오히려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합리화했다. (조소희)